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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일 : 2009-08-18 조회수 : 1385
민주화의 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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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일 : 2009-08-18 조회수 : 1385
민주화의 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3분 향년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6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1961년 34세의 나이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 할 만 했다.

정계에 첫 입문한 지 3일 후 5.16이 터지면서 의원직을 반납해야 했고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직후인 73년에는 그의 존재를 꺼린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돼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함께 3김 시대를 열어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을 만들어 나갔고 이 틀은 현재도 계속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나 5공화국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라는 누명을 덮어쓰며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는 등 고인의 인생은 투쟁과 탄압으로 얼룩졌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진 후 대권에 도전했으나 야권의 분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1997년 12월 치뤄진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며 꿈을 이뤘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은 대통령 당선 이후 더욱 빛났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IT환경을 마련했고 당시 폭발적으로 증가한 벤처기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때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은 우리나라를 스타크래프트 등 온라인 게임은 물론 IT산업 강국으로 끌어올렸고 당시 벤처를 이끌었던 CEO들 중 상당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각 분야를 선도하며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

특히 1998년 닥쳐온 외환위기를 단시일 내에 해소하며 IMF 조기졸업을 주도한 것은 모든 국민의 가슴 속에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다.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 화해무드를 조성한 끝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던 고인.

김 전 대통령은 대중문화의 질적 향상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4년에 있었던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의 단독 면담. 서태지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앨범을 건네며 대중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에 고마움을 표했고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연예인 중 가장 먼저 조의를 표하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인 발언을 이어가며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호소하는 등 국가 원로로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가슴 속 뜨겁게 태워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먼저 떠나 보낸 슬픔도 부질없는 것이 된 채 투쟁과 탄압, 시련과 영광으로 굴곡졌던 김 전 대통령의 시계는 2009년 8월에서 영원히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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