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그동안 상가시장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지난해 3분기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국내 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오면서 점포 권리금이 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거래 정지 상태였다.
그러나 바닥을 찍은 10월 이후 올해 5월에 이르기까지 8개월 연속 권리금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 상승폭이 커졌다. 3월 권리금이 최고점으로 상승한 뒤 4월에 주춤하다 5월 들어서는 다시 소폭 상승했다.
점포거래 포털사이트 점포라인과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이 지난해 10월부터 올 5월까지 점포라인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서울 소재 점포 매물 총 2만446개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5월 평균 매매가는 1억6863만원, 평균 보증금은 5106만원이며, 평균 권리금은 1억1934만원으로 지난해 10월 권리금에 비해 68.98%(4872만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별로 보면 강남구는 올 4월 점포 가격의 오름세가 주춤한 뒤 5월 다시 상승했다. 불황 여파도 있지만 3월만큼의 창업 수요가 발생하지 않아 조정을 겪는 것으로 관측된다. 서초구는 패스트푸드, 주류 업종의 매매가 상승세가 돋보인다. 오락·스포츠, 서비스 업종의 4월 권리금은 지난해 10월 대비 하락세를 보였다가 5월 다시 상승했다.
송파구는 강남 3구 중 4월 들어 매매가가 상승한 유일한 곳이다. 전 업종에 걸쳐 매매가 및 보증금, 권리금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 4월 점포 매매가는 지난해 10월에 비해 147.79% 뛰어 강남3구 중 유일하게 4월에도 권리금과 보증금이 모두 상승했다. 이 지역의 대규모 주거단지를 노린 안정성 위주의 창업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심에 위치한 중구는 보증금보다는 권리금 등락에 따라 매매가가 움직이고 있다. 1월의 경우 보증금이 7개월 내 최저치였음에도 1억5000만원에 육박하는 권리금에 의해 2억원 가까운 매매가를 기록했다. 보증금 수준은 서울 다른 지역과 비슷하지만 권리금 절충이 가능할 경우 굉장히 매력적인 상권으로 판단된다.
한편 강남권에 인접한 강동구는 권리금과 보증금 모두 1월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현재 강동구 인근 8호선 장지역에 조성 중인 가든파이브 상가의 파급효과를 우려한 예비창업자들이 강동구에서의 신규 창업을 기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서울 시내 점포 권리금 상승세는 6월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을 중심으로 조금씩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실물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지표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상가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송파구 권리금 상승세 두드러져
업종별 흐름은 어떨까. 지난해 10월 대비 권리금이 가장 많이 오른 점포는 패스트푸드 업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헬스클럽, PC방, 당구장, 이발소, 마사지실, 바, 퓨전주점, 편의점, 제과점 등 대부분 업종의 권리금이 올랐다.
이에 비해 도넛 전문점은 패스트푸드 업종임에도 권리금이 하락세를 보였다. 도넛 전문점의 경우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양도양수 거래가 거의 없는 데다 자금 조달과 점포 입지 선정 등의 문제로 신규 창업이 쉽지 않다. 즉 거래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락폭이 가장 큰 업종은 네일아트 전문점이며, 이 밖에 주얼리 전문점, 비디오대여점, 액세서리 전문점들도 권리금이 꽤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제과점, 아이스크림, 피자, 커피전문점 등 업종이 포함된 패스트푸드 점포는 수익 안정성이 높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비중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다. PC방이나 편의점, 제과점의 경우에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상당히 많고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어 불황기 창업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불황일수록 안정적 수익 창출을 선호하고 생계형 창업으로 이어지는 최근 창업 경향을 감안하면 프랜차이즈 점포의 가치 상승은 당연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권리금 상승 배경은?
경기가 여전히 안갯속이고 소비심리가 위축돼 있음에도 권리금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98년 IMF 외환위기로 대중들이 불황기 소비에 대해 선행학습을 했고, 생계형 창업자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향후 경기 전망이 너무 불투명했기 때문에 ‘무조건 안 쓴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이 같은 불투명성은 외환위기 때의 선행학습 효과에 힘입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아울러 불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실직자들이 늘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종잣돈(Seed money)을 갉아먹는 것보다 창업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업종 위주의 창업 수요 증가세를 이끌어냈고 그 결과 제과점, 편의점 등의 점포 거래가 활발해졌다. 최근 권리금 상승세는 이들 업종의 초기 투자 비용이 2억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과도 연관돼 있다.
상가 투자자나 자영업자들에게 상가 권리금은 매우 중요하다. 권리금이 비싼 점포는 입지가 좋은 상가로 그만큼 상가에 고객 유입이 뚜렷하며, 영업수익률이 높아 권리금 변동률이 적어 불황기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투자자에게는 상가 가치를 파악하는 잣대가 된다. 그러나 자영업자에게는 창업 때 직접적인 자금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발품을 많이 팔아 권리금이 없는 알짜점포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핵심지역 권리금이 무조건 높은 것만은 아니다. 명동이나 강남에 가면 상당한 권리금이 형성된 점포가 많다. 그러나 최근 경기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상당한 시세가 형성됐던 이들 상권의 권리금이 반 토막 난 경우도 꽤 있다. 그만큼 권리금은 경기상황에 따라 상당히 민감하게 변동된다.
정리하자면 권리금이란 기존 점포 경영자가 점포를 운영하면서 닦아 놓은 점포의 인지도나 고정고객 등에 대한 대가를 가리키며 새로이 해당 점포에 입주하려는 매수자에게 요구하는 금액을 말한다. 점포의 가치를 높이는 여러 요소에 의해 형성되는 일종의 프리미엄인 셈이다. 따라서 장사가 잘되는 곳에 권리금이 형성되면서 권리금이 높은 곳은 비교적 상권이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아울러 권리금은 어디까지나 세입자끼리 서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건물 소유주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새로 적용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도 권리금은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꼭 확인해 둬야 할 부분이다.
계약할 때 권리금 반환 특약 명시해야
또한 권리금은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금액이다. 점포마다 권리금을 책정하는 요소가 매우 다양한 데다 보편적인 산출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계약기간 만료 후 특별한 이유 없이 재계약을 거부하고 건물주가 상가를 철거한다면 임차인은 권리금을 날려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계약 당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에 확인이나 특약 등 절차를 거치는 것이 좋다. 단, 권리금 반환 특약을 임대차 계약상에 명시하기도 하지만 권리금에 대한 법률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송사에 휘말리면 특약을 지키지 않아도 패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유념해야 한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점포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은 까다로운 게 사실이었다. 매출 분석, 유동인구 및 상권 조사, 선정한 아이템에 대한 시장조사 등 거쳐야 할 과정이 많지만 업계 일부에서는 매출 정보를 부풀리는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수수료 이익에만 집착해왔던 것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한때 국내 점포거래시장은 사기가 횡행한다는 인식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의 발전과 점포라인 등 업체들의 노력에 의해 창업정보는 양지로 나왔고 억울한 피해사례도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 최근 창업자들의 목소리다. 점포거래 양성화, 수익률 현실화, 수수료 인하 등의 요소들을 공고히 해 고객 서비스 질을 한층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많다. 앞으로 기업체를 퇴직한 이들을 포함, 기업들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들 대부분이 생계 대안으로 창업을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선호하는 업종으로는 패스트푸드점과 제과점, 대형 피자전문점, 중·대형 식당 등이 있으며 6월은 학기 말 시험과 방학 시즌이 기다리고 있어 PC방 등 방학 성수기 업종의 호황
다음글 걱정부터 앞서는 '5만원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