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하는 창업 및 상가투자 수요가 지난 2~3년간 꾸준히 유입됐다는 것은 이미 정설로 굳어져 있다.
상권과 입지·업종·인테리어의 중요성이 계속 부각되면서 권리금과 보증금·분양가 등 창업 및 상가투자에 필요한 비용은 예전보다 더 커졌다. 상권과 점포라는 한정된 조건 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나은 상권과 좋은 입지의 점포, 뜨는 업종 아이템, 고객이 만족할 수준의 인테리어가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촉발된 점포가격 인플레 현상으로 인해 올해 매물로 나온 점포들의 평균 권리금은 통계산출이 시작된 2008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영업계의 외형적 성장이 곧바로 자영업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에 필요한 비용과 노력은 더 커졌지만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되고 고정비용 지출이 증가하는 등 투자에 상응하는 수익을 거두기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점포거래소 점포라인과 부동산정보업체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은 자영업계와 점포시장의 흐름을 정리함으로써 내년을 준비하는 예비 자영업자와 상가투자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울을 중심으로 ‘2013년 점포 및 상가투자 시장’을 되돌아봤다.
점포라인과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이 올해 1월부터 12월(8일 기준)까지 자사 DB에 매물로 등록된 서울 소재 점포 8191개를 조사한 결과, 평균(146㎡) 보증금은 5668만원, 평균 권리금은 1억2753만원으로 집계됐다. 보증금과 권리금 모두 2008년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 소재 점포의 평균 보증금은 ▲2008년 5015만원 ▲2009년 4753만원 ▲2010년 4483만원 ▲2011년 4781만원 ▲2012년 4980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5년 만에 5000만원 고지를 다시 넘어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아울러 서울 소재 점포의 평균(146㎡) 권리금은 ▲2008년 1억568만원 ▲2009년 1억598만 ▲2010년 1억511만원 ▲2011년 1억1261만원 ▲2012년 1억754만원 순이었다. 2011년을 제외하면 1억500만원대의 평균 권리금을 기록해왔지만 올해 들어 부쩍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강태욱 하나은행 부동산팀장은 “이처럼 올해 들어 보증금과 권리금이 크게 오른 것은 상대적으로 소비자가 많이 모이는 상권을 중심으로 창업 수요가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홍대나 명동 같은 서울시내 유명상권이 몰려드는 소비자들로 인해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매출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권을 선호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보증금과 권리금이 함께 증가했다는 것이다.
서울 25개 구별로 보면 보증금은 용산구가, 권리금은 동대문구가 지난해에 비해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이 위치한 용산구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해제되면서 상권에도 악영향을 미쳐 보증금·권리금이 폭락했지만 최근 들어 일대 부동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반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대문구의 경우 취득세 감면과 개발계획을 호재로 아파트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지역 상권도 발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권리금 상승의 기폭제로 작용한 상황. 또 전농동에 위치한 청량리 민자역사 개발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서 지역 위상이 예전과 달라진 것도 이유다.
용산구 보증금은 지난해 평균 3399만원에서 5084만원으로 49.57%(1685만원) 올라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중구가 4799만원에서 6151만원으로 28.17%(1352만원) ▲마포구가 4743만원에서 5815만원으로 22.6%(1072만원) ▲도봉구가 3451만원에서 4229만원으로 22.54%(778만원) ▲관악구가 4330만원에서 5289만원으로 22.15%(959)만원 올랐다.
반대로 보증금이 떨어진 구는 종로구와 중랑구 그리고 은평구 등 단 3개구에 그쳤다. 종로구 보증금은 8479만원에서 7623만원으로 10.1%(856만원), 중랑구는 평균 보증금이 3246만원에서 3035만원으로 6.5%(211만원)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구의 경우 대표적인 상권인 '종로귀금속거리' 상권이 위축되는 등의 영향이 보증금 하락으로 이어졌고, 중랑구의 경우는 임차인 감소로 인한 보증금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점포 권리금에서는 동대문구가 7194만원에서 1억1167만원으로 55.23%(3973만원) 올라 상승률이 가장 컸다. 이어 ▲용산구 권리금이 8195만원에서 1억2134만원으로 48.07%(3939만원) ▲종로구가 1억1866만원에서 1억6575만원으로 39.68%(4709만원) ▲성동구가 8246만원에서 1억569만원으로 28.17%(2323만원) ▲광진구가 1억300만원에서 1억3153만원으로 27.7%(2853만원) 각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은평구는 권리금 하락세를 기록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 권리금은 9776만원에서 9665만원으로 1.14%(111만원) 하락했다. 지난해 4024만원이던 평균 보증금도 3798만원으로 5.62%(226만원)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업종별 점포 권리금은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에 따라 오르고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출 자체가 점포나 제품 자체의 문제보다는 사회적 이슈와 소비자 트렌드 변화 때문에 증가하거나 감소한 경우가 상당수 관찰됐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업종이 편의점이다. 점포라인과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에 따르면 편의점 권리금은 지난해 9373만원에서 올해 6773만원으로 27.74%(2600만원) 떨어져 하락률이 가장 컸다. 이는 올해 매물로 나온 서울 소재 점포 중 주요 22개 업종의 6332개 점포를 따로 추려 조사한 결과다.
편의점은 올 들어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간의 갈등, 음료 납품업체와 대리점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소비자와 자영업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노출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은 매출이 꾸준하고 관리가 용이하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불경기에 강하다는 장점이 많이 부각되면서 창업수요가 꾸준했으나 올해 불거진 부정적인 이슈들 때문에 당분간은 창업수요 회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반대로 치킨호프 업종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권리금이 올라간 사례다. 이 업종 권리금은 지난해 1억2048만원에서 올해 1억7472만원으로 45.02%(5424만원) 올라 상승률이 가장 컸다.
치킨호프 업종은 국민메뉴로 부상한 ‘치맥’ 효과의 최대 수혜업종으로 평가된다. 직접 매장을 찾아 갓 튀겨낸 뜨거운 치킨을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한때 불경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의류점도 이 같은 트렌트 변화를 따라잡아 재기에 성공한 업종이다.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소형 편집매장을 지양하고 인파가 몰리는 유명상권 내 입지 좋은 점포에 입점해 옷값이 싸고 소비주기가 빠른 ‘Fast Fashion' 브랜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의류점 권리금은 지난해 7700만원에서 9983만원으로 29.65%(2283만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치킨호프 업종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다만 같은 기간 의류점 월세가 228만원에서 323만원으로 41.67%(95만원) 올라 상승률 최고를 기록했다는 점은 고정비용절감 측면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이어 ▲피자전문점(8541만원에서 1억832만원, 26.82% 증가) ▲맥주전문점(1억820만원에서 1억3194만원, 21.94% 증가) ▲퓨전주점(1억1182만원에서 1억3624만원, 21.84% 증가) 권리금이 각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권리금이 떨어진 업종은 앞서 언급한 편의점에 이어 ▲미용실(6286만원에서 4653만원, 25.98% 감소) ▲피부관리실(7786만원에서 6246만원, 19.78% 감소) ▲노래방(1억1976만원에서 1억589만원, 11.58% 감소) ▲레스토랑(1억4666만원에서 1억4141만원, 3.58% 감소) 순이었다.
이에 대해 김창환 점포라인 대표는 “물가 상승과 상권내 A급 입지에 대한 수요 증가 등으로 권리금은 물론 보증금과 월세 또한 꾸준히 오르는 추세”라며 “금융권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상가를 매입해 임대수익을 내려는 투자자가 늘고 있는 만큼 보증금과 월세는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권강수 이사는 “상가점포 권리금은 법적 보호가 없기 때문에 창업 시 권리금이 부담 된다면, 상가가 준공을 앞두고 공급되는 권리금 없는 신규 상가를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다만 신규 분양 상가일 경우 주변에 상권 형성이 잘 갖춰 진지, 임차인이나 이용 고객이 선호하는 입지인지를 꼭 알아보고 계약을 체결해야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