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8월 1일 오후 서울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 네거리로 이어지는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날씨는 ‘흐림’이었지만 거리는 ‘맑음’이었다. 한복을 차려입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다.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연인 한복 커플도 눈에 띄었다. 노리개부터 족두리까지 꽤 갖춰 입었다. 울산에서 온 곽경민(15)양도 1만5000원에 한복과 액세서리를 빌려 입고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그는 “명절에도 잘 입지 않는 한복을 오랜만에 입었는데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거나 쳐다보는 게 신기하다”며 웃었다.
#2.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한가운데에 있는 ‘쌈지길’. 1층에서 출발해 4층 하늘정원에 도착할 때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으로 길이 막혀서다. 쌈지 길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진모(45) 대표는 “시기별로 가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가게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고 매출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삼청동에 밀려 주춤했던 인사동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보증금·권리금이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올랐다. 지방자치단체가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점 진입 장벽’을 높이면서 ‘보증금 진입 장벽’이 덩달아 높아졌다. 인근의 삼청동·익선동과 더불어 전통을 보존한 문화 거리로 ‘몸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92.56㎡(약 93㎡) 상가의 보증금은 8000만원, 월세는 357만원, 권리금은 1억6142만원’. 점포거래 전문 업체 점포라인이 조사한 올 상반기 인사동 점포의 평균 거래 내용이다. 2015년과 비교하면 보증금은 55.3%, 월세는 14%, 권리금은 24.6% 상승했다. 2011년 인사동 점포의 보증금은 2320만원, 월세 224만원, 권리금 4080만원이었다. 5년 사이에 보증금은 2배 넘는 수준(224.8%)으로, 권리금은 3배 가까이(295.6%)로 높아졌다. 2014년 인사동 부동산 시장은 뜨거웠다. 보증금 1억원을 넘기고 권리금은 약 2억원에 다다랐다. 하지만 지난해엔 보증금이 반 토막 나면서 인사동 상권이 주춤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인사동이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점포 거래도 활발하다. 2014년 11건, 2015년 10건이 거래됐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7건의 점포 거래가 성사됐다. 특히 관광객이 가장 몰리는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상권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최근 매물로 나온 33㎡( 33㎡) 상가의 경우 보증금 1억원에 월세 700만원, 권리금 2억5000만원 수준이다. 주변의 부동산 중개인들조차도 “임차인들이 얼마를 팔아야 월세를 내고 이윤을 남길 수 있나 걱정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상권이 살아난 건 찾는 발길이 늘어서다. 인사동의 필수코스로 꼽히는 쌈지길은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올 초엔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이지스(IGIS)가 820억원에 쌈지 길을 인수했다. 쌈지길 지상 1~4층은 계단이 아니라 ‘길’로 이어진다. 완만한 나선길을 조금씩 오르다 보면 4층에 다다른다. 공예와 디자인 상품 등을 판매하는 9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고, 문화 행사도 진행된다. 상가 운영은 수수료 공제 방식으로 매출의 25~30%를 수수료로 낸다.
지난해 메르스 직격탄을 맞고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던 쌈지길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쌈지길 운영위원회 관계자는 “카드 매출을 기준으로 외국인 결제 비율이 25~30% 정도”라며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쌈지길을 찾으면서 매장 매출도 평년의 90%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최고 예술 관청이었던 도화서가 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 대에 몰락한 양반들이 가지고 있던 도자기·고가구 같은 골동품이 인사동에서 팔려나가면서 ‘인사동=골동품 거리’가 됐다. 1970년대에는 상업 화랑이 몰려들면서 인사동 화랑가를 형성했다. 이후 인사동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전통 문화의 거리’로 지정됐고 지금의 모습을 갖춰갔다.
인사동이 활력을 찾아가는 이유는 정체성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인사동을 정책적으로 전통 문화 거리로 묶어뒀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차별화가 뚜렷해진다는 얘기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쇼핑을 할 수 있는 백화점·면세점 같은 곳은 늘어났지만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거리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사동이기 때문에 이곳 점포를 노리는 특수 수요도 있다. 전통 공예품, 한정식, 전통 찻집 등을 운영하려는 상인들이 주목한다. 부동산 중개업체 김모(48·여)씨는 “호가는 계속 올라가고 실제로 상가 계약을 갱신하는 거래에선 이전 계약보다 월세가 50~100만원은 기본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럼에도 인사동은 전통 거리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광고 효과를 보고 월세가 비싸더라도 들어 오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복 입고 관광하기’라는 뜻밖의 유행도 인사동에는 홍보와 경제적 효과를 안겨준다. 인사동 방문객은 평일에 3만~5만명, 휴일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복 열풍은 젊은층을 인사동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복을 입고 인사동 같은 전통 거리에서 찍은 사진 등이 널리 퍼지고 있다. 한복 대여점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인사동은 주변의 든든한 ‘아우들’ 덕을 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사동을 밀어냈던 삼청동,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익선동과 인사동을 잇는 삼각벨트가 주목받기 때문이다. 전통 거리와 한옥 마을을 보존한 관광 벨트가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익선동은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한옥이 붙어 있어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게스트하우스, 작은 카페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화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시세는 한옥 3.3㎡당 3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마저도 수요는 많지만 매물이 부족한 형편이다.
삼성화재가 인사동에 비즈니스호텔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인사동이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다. 삼성화재는 2011년 대성산업이 채무를 갚으려고 내놓은 인사동 사옥 토지 537㎡(약 5855㎡)을 1384억원에 매입하고 호텔 등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상가 분석 전문가 이동열 어반에셋 이사는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대기업이 투자를 검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 상권이 주목받을 수 있는 모멘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승 분위기가 더 이어질지는 ‘얼마나 개성을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이 이사는 “인사동 상권이 앞으로도 활력을 이어갈 지 여부는 대형 자본이 유입되더라도 인사동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