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에서 일식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중저가 업종으로의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이미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권리금이 하락하면서 가게를 팔 경우 손해를 볼 수 있어서다. 이씨는 “앞으로 권리금은 더 떨어질 텐데 결국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업종 전환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새로운 창업을 고민하고 있는 김모씨는 최근 상가 전문 컨설팅업체를 찾아 자문을 받았다.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김영란법 합헌 이후부터 한식·일식 등 객단가가 5만원 이상인 식당들의 경우 매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매물로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 가격이 저렴한 업종이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이미 서울 주요 상권 업종에 일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점포 가치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인 권리금을 살펴본 결과 김영란법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한정식점, 일식점, 생선회·해물 등의 경우 하락세로 돌아선 반면 저렴한 제품을 파는 중국집·우동전문점 등은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객단가가 높은 업종일수록 권리금이 하락하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 영향 받은 업종, 권리금 하락 폭 본격화=2일 상가정보업체인 점포라인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1월~9월13일) 자사에 매물로 등록된 서울 소재 상가의 업종별 권리금을 분석한 결과 김연란법의 직접 영향을 받는 업종을 위주로 권리금이 떨어졌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난해 평균 9,855만원이던 서울 소재 한식점들의 권리금은 올해 들어 지난달 13일까지 조사한 결과 8,504만원으로 감소했다. 일 년 만에 권리금 규모가 13.71% 줄어든 셈이다.
일식점도 비슷한 모습이다. 같은 기간 서울 소재 일식점들의 권리금은 1억1,268만원에서 1억32만원으로 10.97% 떨어졌다. 찾아오는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매출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성되는 권리금의 액수가 줄어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식값이 비싼 생선회·해물 업종의 권리금 역시 지난해 1억863만원에서 올해 1억293만원으로 줄었다.
아울러 한식점과 일식점·생선회 등 김영란법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이들 업종의 경우 권리금뿐 아니라 보증금·월세 등도 올해 들어 지난해보다 하락 폭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 객단가 낮은 업종은 권리금 등 상승=모든 상가 업종들이 울상인 것은 아니다. 서울 내 중심 상권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뉴를 파는 상가는 김영란법의 영향을 거의 받고 있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서울시청 근처에서 김밥이나 라면 등을 파는 분식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법 시행과 관계없이 손님은 꾸준하다”며 “원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현금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분식점이나 중국집·돈가스집 등 단품 메뉴를 주로 취급하는 상가의 권리금 규모는 지난해보다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평균 6,966만원이던 서울 소재 분식점의 권리금은 올해 들어 8,413만원으로 20% 넘게 증가했다. 중국집과 돈가스·우동전문점 역시 같은 기간 권리금 규모가 각각 8.95%, 14.51% 상승했다.
◇서울 주요 상권, 업종 지도 바뀐다=이처럼 지난해와 올해 서울 소재 상가 권리금 등락의 격차가 업종별로 큰 것은 경기의 영향도 있겠지만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불안감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근무하는 서울 광화문 일대와 여의도·강남 등의 경우 그 여파가 더 크게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앞으로는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상가 업종별 희비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고급 음식점들의 경우 김영란법의 시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메뉴의 다양화를 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려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