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서 장어구이집을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지난달 초 가게를 매물로 내놨다. 하루 평균 200만~300만원 매출이 나올 정도로 장사가 꽤 잘되는 곳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1억원의 권리금을 붙여 2억5000만원에 가게를 내놨다. 하지만 가게는 나가지 않았다. 김 사장은 “김영란법 시행 후 설마 했는데 한 달 만에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며 “법 시행 전까지는 관심이 있다는 문의 전화도 받았는데 이달 들어 한 통도 없어 권리금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8일 시행 한 달을 맞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가져온 변화다. 법 시행 후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등에 위치한 고급 음식점을 중심으로 권리금이 떨어지는 등 업종 지형도가 변하고 있다.
자영업자에게 점포 거래를 중개해 주는 점포라인이 김영란법 시행 전후로 서울 소재 점포의 업종별 평균 권리금을 분석한 결과 시행 전(9월 1~28일)보다 시행 후(9월 29일~10월 24일) 고가 음식점의 권리금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중저가 음식을 파는 음식점의 권리금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 보면 서울 소재 한식·일식점 권리금은 법 시행 전보다 평균 1000만원 내려갔다. 고깃집은 평균 2000만원 넘게 떨어졌다. 구별로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 직장인이 몰려 있는 강남구·영등포구 등에 영향이 더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영등포구의 권리금은 평균 8532만원으로 시행 전(9260만원)보다 7.8% 하락했다. 강남구 평균 권리금은 9273만원으로 한 달 전보다 66만원 떨어졌다. 점포라인 염정오 팀장은 “비즈니스 미팅이 많은 강남이나 여의도 등에 위치한 고급 음식점의 권리금이 하락했다는 것은 김영란법에 따른 매출 감소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호프집은 시행 전보다 권리금이 평균 3000만원 올랐다. 커피전문점 역시 평균 500만원 이상 올랐다.
서초동의 A한식당 관계자는 “법 시행 후 주중에도 예약은 거의 없고 주말에는 가족 손님만 일부 찾아온다”며 “가게를 접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업종 간 희비가 엇갈리면서 식당 주인뿐 아니라 속 타는 사람은 또 있다. 건물주다. 건물 임대가 안 되면 임대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안 그래도 서초나 강남에 중대형 건물 공급이 늘면서 임대수익률이 주춤한데 법 시행 후에는 요식업종에 상가를 빌려주는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대형 빌딩의 투자수익률은 감소 추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2분기까지 중대형 상가 투자수익률은 3.3%로 전년 동기(3.5%)보다 떨어졌다. 광화문과 종로와 같은 도심의 투자수익률도 3.78%에서 3.49%로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상가 수익률에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문소임 리얼티코리아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고급 요식업종 점포의 임대는 더 안 돼 권리금이나 임대료 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