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형 창업은 따지고 보면 그다지 새로운 아이템은 아니다. 창업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라고나 할까. 부모가 가게를 열면 자녀들이 일손을 돕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가족형’이 창업 트렌드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커진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 경비 절감 효과가 크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최근 불어 닥친 경기 침체는 ‘실업률 증가→창업 인구 증가’로 이어졌고 창업 시장 측면에서는 가족형 창업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실직자 증가로 창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수요는 늘어났지만 예전처럼 선뜻 막대한 비용을 들어가며 가게를 열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족형 창업 증가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다. 물론 여기서 예비 창업자들의 마음을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자금 문제다.
한국창업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예비 창업자 3명 중 2명은 창업 투자비용으로 1억 원 이하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창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도 ‘자금’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경기가 수개월째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 문제는 예비 창업자들의 마음을 더욱 옥죄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경비 절감에 효과가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공동 창업이 인기를 끈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가족형 창업은 공동 창업의 또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족형 창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가족형 창업의 장점이기도 하다. 가족형 창업은 투입되는 비용이 비교적 적고 점포 수가 적은 곳일수록 유리하다. 또 업무량이 많아 인건비가 비싼 창업 아이템에 적용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편의점이나 PC방과 같은 업종은 24시간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밤, 새벽 등 취약 근무시간에는 지출되는 인건비가 비싸다. 아무래도 가족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경우 인건비가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족형 창업 아이템으로 음식 업종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배달 전문 업종은 인건비가 매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자녀나 형제가 직접 배달을 나서 인건비를 줄인다면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운영 수익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1억 원대 소자본 아이템 유리
임대료 문제도 선결 과제다. 점포 거래 정보 업체 점포라인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대비 상가 점포 권리금이 지난해 4분기 대비 47%나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불황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권리금이 뛰었다는 것은 창업에 대한 열기가 그만큼 커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가족형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자본 업종 대명사 제과점, 아이스크림, 피자 등 패스트푸드 점포의 권리금이 전반적인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패스트푸드 점포는 지난 4분기 평균 권리금이 7830만 원이었는데 올 1분기에는 107.89% 오른 1억6239억 원을 기록했다. 점포라인 관계자는 “가족형은 일반적으로 생계형 창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최근 창업자들 상당수가 이에 해당된다”고 강세 이유를 설명했다.
가족형 창업은 가족 간 깊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점포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유리하다. 점포를 운영하면서 힘든 일 중 하나가 바로 종업원 관리다. 업종 선택이 탁월하고 입지가 좋다고 해도 종업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는 곧장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매출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아무래도 고용주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가족형 창업은 가족이 종업원이자 주인의 역할에서 서비스에 나서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불황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가족형 창업 아이템의 80%는 음식 업종에 편중돼 있다. 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선호한다. 프랜차이즈 음식 업종이 각광받는 이유는 노하우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입지와 서비스만 좋다면 절반의 성공은 보장받지만 반대로 그만큼 업종 차별화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주변에 경쟁 점포가 한꺼번에 몰려 레드오션으로 돌변할 경우 인건비와 서비스 질이 창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며 “아울러 창업 전 가족끼리 역할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일반적인 가족형 창업은 부모 중 한 명이 점포를 열고 자녀들이 함께 운영에 나서는 경우다.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치킨 전문점 BHC(59㎡)를 운영하는 유두백 씨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유 씨가 창업을 결심하고 문을 연 것은 지난 2007년 12월. 같은 자리에서 5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했지만 주변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줄어들고 있던 터에 유 씨는 큰딸 은경 씨의 “업종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치킨 전문점을 새롭게 열었다. 점포 문을 열면서 유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업종 선택이었다. 단순 치킨 배달 전문점은 이미 여러 곳이 들어선 상태여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유 씨는 배달과 매장 운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치킨+호프집’을 선택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권리금이 필요하지 않아 7000만~8000만 원 상당의 개·보수, 인테리어 비용, 가맹비 등이 들었다. 최근 경기 불황 속에서 유 씨 가게는 매달 3000만 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1200만 원 정도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전체의 80% 음식 업종에 편중
안성시 중앙대 근처에 있는 ‘모박사 부대찌개’는 가업인 식당을 형제들이 함께 운영해 20개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로 키운 케이스다. 청주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주효석 씨는 지난 2000년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이 운영해 오던 부대찌개 식당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맛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꾼다’며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한 끝에 주 씨가 운영 중인 본점은 매일 찾아오는 손님만 500~600명에 이른다. 주 씨 가게는 형제 간 역할 분담이 명확하다. 맛을 결정하는 육수는 여전히 모친이, 남동생 용찬 씨와 여동생 지현 씨는 조리를 맡고 있다. 부친은 직영 농장 관리, 전반적인 경영은 주 씨 몫이다. 최근 들어 사위, 며느리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은퇴 인구가 늘어나면서 부모가 창업하고 자녀들이 일손을 도우는 실버형 가족 창업 인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형제자매가 공동으로 창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성남시 중원구 중동 ‘치어스 성남 중동점’은 최만기, 규학, 영규 씨가 지난해 10월 공동으로 문을 연 점포다. 한 달 매출은 평균 6000만 원, 순이익은 2000만 원이다. 가족형 창업이 중간에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수익 배분 문제가 핵심 사항이다. 가족형 창업에 성공한 케이스는 수익 배분이 명확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창업 전부터 수익 배분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것이 성공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최 씨 형제도 월수입에서 가족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뺀 뒤 나머지 금액은 투자 금액대로 정확하게 나눠가졌다. 업무 시간이나 역할을 정확하게 나누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최근에는 자녀들이 창업한 뒤 부모가 일손을 거드는 사례도 조금씩 늘고 있다.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 부근에 ‘카페루미’를 운영하는 김응단 씨는 카페에 관심이 많던 딸의 권유로 지난 3월 14일 카페 문을 열었다. 20대 중반인 딸은 가게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창업 아이템을 음식 업종에만 한정지을 수는 없다. 전문직 종사자라면 자신이 강점인 분야에 가족과 함께 나서는 것도 좋다. 천안시 두정동에 있는 프로광택 천안점은 충청권 유일의 프로광택 가맹점이다. 엔지니어 출신의 김건웅 씨와 이미정 씨가 운영 중인 이곳은 소문을 타면서 고객층이 충청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출장 사진 전문점 베이비 캔버스는 출장 유아 사진 전문 업체로 무점포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최근 예비 가족 창업자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