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권리금이 서서히 오르고 있지만 점포 보증금은 불황으로 신음하던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자들이 점포 자체의 가치보다 점포가 창출 가능한 수익성이나 기회요인 등 무형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올해 1월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과 점포거래소 점포라인 DB에 등록된 서울 25개 구 소재 점포 1689개를 2009년 1월 등록매물 2389개와 비교 분석한 결과 서울 소재 점포의 1㎡당 보증금은 21.97%(7만8330원) 떨어졌다.
보증금이 떨어졌다 해도 월 임대료가 올랐다면 전세 환산가로 따져 변동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올 1월 등록 매물의 임대료 총액 역시 2009년 1월 대비 26.9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은 강동구였다. 강동구 소재 점포의 1㎡당 보증금은 지난해 1월 35만9747원에서 올 1월 18만1829원(-49.46%)으로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월 임대료는 219만원에서 226만원으로 7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전세가로는 700만원 상승에 그친 셈이다. 강동구의 보증금 하락은 2008년 불황 이후 소비가 줄어들고 점포 매출이 정체 상태에 빠지면서 임대조건이 더 저렴한 타 지역으로 신규 창업 수요가 빠져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월별 평균 권리금을 조사한 결과 강동구와 이웃한 광진구의 경우 9월부터 보증금 시세가 떨어지다가 12월 들어서는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강동구 점포의 평균 보증금은 광진구 대비 평균 500~1000만원 가량 높았다. 즉 강동구에 창업할 예정이던 점포 수요자들이 시선을 광진구로 돌린 셈이다. 결국 강동구 건물주들도 임대조건을 더 낮춰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점포라인 DB에 등록된 강동구 소재 점포 중 동일한 조건(1층, 99.17㎡)의 매물 2개를 비교해 본 결과 2009년 1월 매물은 보증금 6000만원에 월 임대료 300만원이 책정돼 있었지만 2010년 1월 매물은 보증금 2000만원, 월 임대료 150만원의 조건으로 책정된 것으로 조사됐다. 두 매물은 시설 수준도 중상급으로 비슷했지만 전세 환산가로 보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뒤를 이은 것은 지하철 9호선 호재로 주목받던 양천구. 이 지역의 1㎡당 보증금은 1년 만에 42만684원에서 22만5459원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월 임대료마저 274만원에서 263만원으로 11만원 하락했다.
서울의 대표 상권 명동이 자리한 중구도 보증금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1월 중구의 1㎡당 보증금은 45만4566원으로 전국은 물론 서울에서도 최상위권 수준을 기록했지만 올 1월 들어서는 44.72%(20만3290원) 떨어진 25만1276원에 그치며 평범한 위치로 전락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월 임대료가 320만원에서 379만원으로 59만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건물주들이 불황인 만큼 보증금 대신 월세를 올려 시세 하락 효과를 분산하려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의 보증금 하락 추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외부적인 요인과 함께 점포 수요자들의 정보 수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관련 정보가 별로 없던 예전처럼 단순히 점포의 시설 가치와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계약하는 게 아니라 주변 상권이나 유동인구, 지역 개발계획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미리 알아봄으로써 점포의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역 내 중심상권에 위치한 일부 점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점포 보증금이 임대 수요자에게 매력을 잃으면서 불황 등 외부 요인과 맞물려 자연스러운 시세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보증금 성격 자체가 경기 후행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권리금에 비해 상승시점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경기가 나아지더라도 이 부분이 실물경제에 반영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보증금 상승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1년 전에 비해 1㎡당 보증금이 오른 곳은 5개 구 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이 오른 곳은 각종 개발호재로 주목받고 있는 용산구였다. 용산구 소재 점포의 1㎡당 보증금은 지난해 1월 38만9878원에서 올 1월 58만4831원으로 50%(19만4953원) 올랐다. 월 임대료는 209만에서 207만원으로 2만원 하락에 그쳐 전체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뒤를 이어 관악구가 32만4915원에서 41만2990원으로 27.11%(8만8076원), 동대문구가 35만8360원에서 43만6165원으로 21.71%(7만7805원), 도봉구가 19만48원에서 21만139원으로 10.57%(2만91원)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관악구는 서울 지역 상권 중에서도 1~20대 유동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불황에도 매출이 크게 떨어지는 등 우려할 요소가 적어 꾸준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
보증금 상승 지역 중 눈에 띄는 것은 종로구다. 지난해 종로구는 종로 상권의 명성과 집객력에도 불구하고 불황의 여파를 정면으로 받으며 점포 시세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개인 자영업자는 물론 유동인구를 겨냥하고 입점해 있던 대기업 안테나 샵이 이탈한 공백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로구는 경기 회복 분위기에 힘입어 1년 만에 옛 명성을 되찾을 기세다. 1㎡당 보증금은 44만9647원에서 46만2652원으로 2.89%(1만3005원) 오르는 데 그쳤지만 월 임대료가 293만원에서 442만원으로 올라 50%가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전세 환산가로 계산하면 1억5000만원 가량 시세가 오른 셈이다.
권리금 상승세는 서울 주요 상권이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강남역 상권이 위치한 강남구의 경우 점포당 월 평균 권리금이 지난해 12월 1억3304만원에서 올 1월 1억9013만원으로 42.91%(5709만원) 올랐다.
또 홍대 상권이 위치한 마포구는 같은 기간 1억800만원에서 1억4538만원으로 34.61%(3738만원), 신촌 및 이대 상권이 위치한 서대문구는 9503만원에서 1억1947만원으로 25.72%(2444만원) 각각 증가했다.
반면 권리금이 하락한 곳은 대체로 주요 상권이 정체된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유역 상권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장세가 보이지 않는 강북구가 대표적이다. 강북구 점포의 월 평균 권리금은 지난해 12월 1억 원에서 7000만원으로 30% 가량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또 금천구는 1억5187만원에서 77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하락하는 등 서울 25개 구 중 권리금 하락률이 가장 컸다.
점포라인 정대홍 팀장은 “권리금 상승세에 비춰보면 보증금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라며 “보증금 하락은 창업초기 비용부담을 줄여주고 자금 운용 범위를 넓혀 주는 등 예비 창업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장경철이사는 “매년 3월이 전통으로 창업 시즌이기 때문에 설 연휴 이후 본격적인 보증금 인상도 예상 된다”며 “새해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경기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을보다 적극적으로 봄 시즌에 점포 인수에 나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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